동아일보
2000.09.28 (목) 18:44
‘나눔의 가게’에 월 3만원씩을 내겠다고 연락해온 박찬열(朴贊悅·40)씨. 그가 운영하는 서울 양천구 목3동 ‘늘푸른 만화방’에서는 여느 만화방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눈에 띈다.
우선은 한쪽 벽구석에 즐비하게 붙은 지로영수증. 의문은 만화방 입구에 붙은 공고를 보면 풀린다. “장애인의 후원자가 돼 주십시오. 월 5000원의 후원금을 내시는 분은 만화방 회원자격을 드리고 열람료의 30%를 할인해드립니다.”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기부방법도 모르고 쑥스러워 망설이는 손님들을 위한 그 나름의 ‘서비스’다. 중증 장애인 170명이 요양하는 한사랑마을 후원을 위해 손님들이 5000원을 맡기면 그가 은행에 가서 입금을 하고 지로 영수증을 벽에 붙여놓는다. 1년사이 회원이 32명으로 불었다.
또 있다. 카운터에 놓인 투명한 장학기금함. 그가 하루 벌이 중 하루 몇천원씩 되는 대로 집어넣는 저금통이다. 그는 이돈을 모아 인근 소년소녀가장 2명에게 6개월에 한번씩 장학금 25만원을 전달한다.
만화방이 엄청 잘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한달 200만∼300만원 정도 수입이 있지만 만화방 낼 때 얻은 빚 때문에 손에 쥐는 것은 100여만원에 불과한 빠듯한 생활이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훔쳐먹기도 할 정도로 늘 어려웠어요. 당장 생활을 꾸릴 수만 있으면 더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게 당연하죠. 많이 도우려면 많이 벌어야 하니 열심히 사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요”라고 말하는 그는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다.
유명인사가 번듯한 액수를 내놓아야 기부라고 생각하는 현실이지만 박씨처럼 보이지 않게 나누는 삶을 가꾸는 이들도 적지 않다.
순천향대 황창순(黃昌淳·사회복지학)교수는 “기부문화의 생명은 꾸준하게 이뤄지는 개인기부”라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개인기부가 전체 기부액의 77% 이상을 차지한다. 개인이 유산으로 남긴 기부액을 더하면 90% 이상으로 껑충 올라간다.
유산 1%와 수입 1%기부를 약정한 김칠준(金七俊) 변호사는 “자신이 가진 것에서 1%만 떼어 1% 부족한 이웃과 나누자는 ‘1% 나눔운동’이 생산적인 한국형 기부방식일 수 있다”고 말한다. 큰 부담없이 누구나 실천할수 있으면서도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는 것.
이화여대 이철희(李哲熙·사회복지학)교수는 “기부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경우 근래 30여년간 개인 평균 수입에서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선”이라며 “바로 이 2%가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사회 미국을 그래도 살만한 공동체로 묶어주는 힘”이라 말한다.
제대로 된 기부액 통계조차 없는 한국이지만 희망은 엿보인다. 셋째아이 임신중 다운증 진단을 받았지만 최근 정상아를 출산한 한 부부는 세 아이의 양육비 10%를 장애인 어린이들에게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수입의 1%를 나누는 ‘나눔의 가게’ 참여자도 늘고 있다. “너무 적은 돈이라 받아줄지…”를 걱정하며 문의를 하는 이들은 빵집 정육점 어린이집 이사대행업체 등 다양한 업종들. 아름다운재단 유창주(劉昌周) 사무국장은 “재단을 운영하며 확인하는 것은 나눔은 새로운 나눔을 낳는다는사실”이라고 말한다.
나눔의 가게 첫호 동숭아트센터가 제공한 극장표는 장애인들의 ‘문화향유권 1% 나눔운동’으로 발전했다. 종군위안부 김군자 할머니 이야기에 감명받은 한 벽지회사에서 김할머니가 사는 ‘나눔의 집’ 도배를 자처하고 나섰으나 할머니들은 이를 도배가 더 시급했던 역사문제연구소로 양보하기도 했다. 작지만 희망을 주는 소식들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끼'를 기부합니다-동덕여대출신 연예인 자선활동▼
유엔아동기금(UNICEF) 등과 유대관계를 갖고 평생 봉사활동을 펼친 오드리 헵번, 반전운동에 이어 요즘은 각종 자선활동을 벌이는 제인 폰다, 전세계 30개국의 야생동물 보호계획에 수백만달러를 기부한 해리슨 포드….
나눔의 방식은 다양하다. 금전이나 시간 뿐만 아니라 ‘끼’나 ‘능력’도 나눌 수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이 공익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재능이나 돈을 내놓는 사례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적지 않다.
남몰래 자선활동에 힘쓰는 가수 유승준이나 기아문제에 대한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혜자 등이 유명하다.
여기에다 “이름만 내거는 홍보대사는 싫다, 대학생만의 ‘끼’로 신선하게 돕고 싶다.”고 주장하는 젊은 연예인그룹이 아름다운 재단에 타고난 ‘끼’를 기부하기로 했다.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연예인들의 모임인 ‘디캣츠’(Dcats)가 그들.
만능 엔터테이너로 요즘 주가를 올리는 박경림이 회장이고 김효진 이의정 박시은 이경애 김민주 홍수현 박진희 등 인기연예인 30여명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아름다운재단이 주최하는 각종 이벤트에서 각자 능력껏 도우미 역할을 하겠다고 약정했다.
이에 따라 ‘유산 1% 남기기’ ‘수익금 1% 기부하기’ 등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에는 ‘끼 1%를 나누기’ 항목이 추가됐다.
“디캣츠는 미혼모 등 불우한 여성들을 돕기 위해 5월17일부터 3일간 ‘셰익스피어식 사랑법’을 공연하기도 했다”는 박경림은 그 수익금을 ‘미혼모를 위한 기금’으로 아름다운재단에 지정기탁할 수 있다는 얘기에 뛸 듯이 기뻐한다. 재능1%란 개념이 모호해 개런티의 1% 기부 약정을 추진중이기도 하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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