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00.11.10 (금) 17:22
충북 청주시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중앙공원．토요일 정오의 가느다란 늦가을 햇살을 받으며 앉아있던 수백명의 노인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사랑의 무료급식소’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지만 손녀,손자 같은 대학생들이 퍼 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따뜻한 국수에 흐뭇해진 노인들은 삼삼오오 자리에 모여앉아 젓가락을 식판에 담갔다．“청주에 이렇게 착한 대학생들이 있어 우리 노인들은 늘 행복하다”는 김창복 할머니(76·청주시 수동)는 함박 웃음을 지었다．
점심을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수백명의 노인들에게 이 곳에서 제공하는 한끼 식사는 더없이 소중한 것．자원봉사를 하는 대학생들에게서도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이들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식사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따스한 사랑의 국물을 따라줬다．
‘사랑의 무료급식소’가 생긴 것은 지난 90년．개인주의가 팽배해가는 세태에 맞서 청주 대학생선교회(CCC) 소속 8개 대학 재학생 및 간사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직접 전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결식 노인들을 위한 점심제공을 시작했다．
이들의 무료급식소 운영은 당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결국 전국 도처에 무료급식소가 자리잡게 된 작은 불씨가 됐다．10년여 동안 한결같이 노인들을 위해 자리를 지켜온 이 곳을 거쳐간 노인들은 현재까지 연 인원 25만명．대학생 자원봉사자도 지금까지 1만3000여명에 이른다．
그동안 이 사랑의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기 위해 들어간 돈이 상당하지만 대학생선교회 자원봉사자들은 직접 헌금을 모아 충당해 왔다．또 재정이 어려울 때는 인근 교회들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성도들이 갖다준 국수,김치,쌀 등으로 고비를 넘겨왔다．
“점심식사 한끼를 어려운 이웃과 나눈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청주 대학생선교회 대표 주서택 목사는 “IMF 때는 실직자들이 몰려와 매주 1000여명에게 식사를 공급하기도 했는데 익명의 후원자들과 한국 도자기 등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운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이 하는 일은 토요일 점심 대접 뿐 아니다．추운 겨울 생활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의 바깥 출입이 어려워질 때면 사랑의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이 ‘내복나누기 운동’을 전개한다．‘따뜻한 내복 한 벌을 이웃에게 전하자’는 구호 아래 무연고 노인들과 교도소의 장기수들에게 내복을 전하는 것．이들이 모아서 제공한 내복은 지금까지 3400여벌에 이른다．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의 불씨를 지펴준 셈이다．
이밖에도 사랑의 무료급식소에서는 재정의 어려움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결혼식 사업을 전개했고 입시철에는 자신들의 방을 수험생들에게 제공하는 무료숙박운동을 벌여왔다．또 실직자나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자녀교육을 위한 무료공부방 운영 및 도시락 전하기 등을 펼쳐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이웃과 어른을 경시하는 풍조 속에 모두들 살아가기에만 급급한 현실．그렇기에 어려움의 현장에 직접 몸과 마음으로 참여하는 사랑의 실천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고 있는 청주 사랑의 무료급식소．다가온 초겨울 찬바람 속에 어느 곳 보다 훈훈한 기운을 피워내고 있는 곳이다．
사랑의 무료급식소에서 3년째 봉사하고 있는 최한나씨(22·청주대 3년)는 “자신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베푸는 일에 동참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최정욱기자 jwchoi@kmib.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