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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9 (화) 17:56
"십년 전쯤 지방의 한 양로원에서 1년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이었어요. 함께 지냈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울면서 잡으시더라고요. 마치 아기처럼. 그때부터 독거(獨居)노인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시작됐죠. "
서울 강북구 미아6동 '자비의 집' 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8년째 점심 식사를 만들어주고 있는 지원경(池圓暻.51.여)씨. 池씨는 독거노인들의 '어머니' 다.
池씨는 1989년 한 방송에서 어렵게 사는 노인들의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경북 예천의 한 양로원을 찾았다.
두 아들의 방학을 맞아 한달간의 양로원 봉사를 시작한 것. 그러나 목욕을 시켜주고 병간호를 해가면서 도저히 노인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후 1년 동안 한달 중 보름은 예천에서, 보름은 서울에서 보내는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때 맺은 노인들과의 인연은 자비의 집 활동으로 이어졌다.
池씨의 하루는 오전 8시30분 자비의 집을 찾는 노인들을 맞으면서 시작된다. 무료 점심을 먹기 위해 강북구 일대 독거 노인들이 일찍부터 池씨를 찾아 오기 때문이다.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는 노인들에게 점심식사는 하루 중 가장 큰 '행사' 다.
"할머니, 춥죠. 별일 없으셨어요?" 池씨의 다정한 물음에 노인들은 밤새 닫았던 입을 연다.
"요새 너무 아파. 병원에서 치료도 안해준대. …" 최근 흑종양이라는 암 선고를 받은 崔모(79)할머니는 池씨에게 하소연을 한다.
세 명의 딸이 있지만 혼자 살고 있는 崔할머니는 병원에서 6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항암치료도 중단한 채 혼자서 조용히 죽음의 날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池씨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崔할머니처럼 지병을 갖고 있죠. 모든 분들을 집에서 직접 돌봐드리고 싶은데 몸은 한 개뿐이고…" 라며 안타까워했다.
자비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하는 독거 노인은 하루 1백20~1백50명선. 많은 노인들을 지켜보다 보면 웃는 일도 생긴다.
점심식사를 위해 줄을 선 노인들이 서로 "새치기를 했다" 며 다투는 모습이나 자비의 집 앞에서 약을 파는 동네 약장사의 달변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池씨는 "점심 식사가 끝나고 비닐 봉지에 밥을 담아가는 노인들을 볼 때면 너무 안타깝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함께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엄한 시어머니이기도 하다. 봉사자들이 점심 반찬을 만들다가 조금이라도 먹으려 하면 당장 불호령을 내린다.
池씨는 "연말연시 모임에서 남아도는 음식들을 보면 너무 아까워요.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드시면 좋을 텐데…" 라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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